사랑의 등대 진황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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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본은 조선을 지배하고 태평양전쟁을 준비했다. 전쟁 준비에 우리 어린 소년, 소녀들이 동원되었다. 낯선 타국에서 맨몸으로 쇳덩이를 옮겨 선로를 깔거나 산을 깎아 방공호를 팠다. 노동의 강도가 얼마나 심했던지 영영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이들도 많았다. 평화로운 제주도 예외가 아니었다. 1940년, 예래마을에 살고 있던 소년 강진황은 이유도 모른 체 부모와 헤어져 배에 올랐다. 일본 감독관들은 잠자는 몇 시간을 제외하곤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밤이 되어 숙소로 돌아오면 주먹밥 한 덩이 주는 게 고작이었다. 눈앞에서 또래 친구가 아사하거나 사고로 죽어나가는 모습은 슬픔을 넘어 공포였다.

1945년 해방이 찾아왔다. 강진황은 상한 몸을 끌고 고향 제주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제주 사계리의 김춘지를 함께 새로운 미래를 그렸다. 다음 해, 희망을 안고 일본으로 건너가 혼인을 올렸고, 정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 고생 끝에 플라스틱 제조회사를 설립해 자수성가했다.

그들에게 제주 바다는 끝까지 버티게 해준 힘이자 그리움이었다. 그리하여 부부는 그리움을 대신해 자신들의 고향에 등대를 세웠다. 뱃일 나간 고향 사람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며 예래포구에 하얀 등대를, 사계항엔 빨간 등대를 세워 그들의 눈이 되도록 했다. 마을 사람들은 고마운 마음을 담아 ‘진황등대’와 ‘춘지등대’라 하여 부부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두 등대는 바다 위에서 생의 물길을 오가는 고향민에 대한 사랑이며, 멀리 마주보고 서서 서로를 비추는 부부간의 사랑이다.